2009년 9월 14일 월요일

아님 말고 1000곡(75)

75. See that my grave is kept clean(1927)-Blind Lemon Jefferson-

(1) 대중음악의 영웅(?)들 중 요절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최초의 인물이 아마도 이 사람일 것이다.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의 생일에 대해선 1893년 9월 24일 설, 1894년 10월 26일 설, 1897년 7월 설 등의 세 가지의 설이 있으나 그의 사망에 대한 기록은 대략 1929년 12월 12일 경(이 것도 정확하진 않다.)으로 통일되어있다. 블라인드 레몬이 활동을 정식으로 시작한 것이 1926년이었으니 말 그대로 3년 여의 기간 동안 화끈하게 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나면서 자연스레 은퇴한 경우이다.

(2) 토돌이님께서 "텍사스에서 블루스라니?"라는 의문을 보이셨다. 그렇다. 전형적인 남부의 음악으로 알려져있는 블루스 음악이 블루스의 초창기 시절부터 텍사스에서도 발달했다는 사실은 "텔레비전 방송 작가들 수준의 스크립트"에선 다뤄질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텍사스 블루스라는 장르를 개척한 사람(The founder of Texas Blues)이 바로 이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이라는 사람이다.

(3) 단지 3년 여의 짧은 활동을 했던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의 이력을 생각한다면 여러분들이 다들 알고 계실 곡들인 The White Stripes의 "De Ballot of De Boll Weevil"은 블라인드 레몬의 "Boll Weevil Blues."의 커버 버전이고, Bob Dylan의 "See That My Grave Is Kept Clean"은 동명의 블라인드 레몬의 곡을 커버 버전으로 녹음한 것이고, The Beatles의 "Match Box"은 "Matchbox Blues."의 커버이며 B. B. King의 "See That My Grave Is Kept Clean"역시 그렇고 "Mean Jumper Blues" Counting Crows의 리드 보컬인 Adam Duritz이 부른 것으로 유명하다. 이 정도로 후대의 아티스트들에 의해 사랑받는 곡을 많이 남긴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가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이다. 이 세 가지의 이유가 그를 여러분들께 소개하려는 이유 되시겠다.



블라인드 멜론 제퍼슨은 1920년대에 미국 전역에서 가장 인기있는 블루스 싱어였다고 블루스 연구자들은 전한다. 그리고 그를 가리켜 "Father of Texas Blues"이라 한다고 한다. 즉, 전에 이야기한 적 있었던 텍사스 블루스는 이미 1920년대에 그 전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시겠다. 그의 음악적 스타일을 요약하자면 두 가지 정도의 특징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음악 자체가 대단히 독창적이고(individualistic이라는 영어 단어를 이렇게 해석함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스스로의 연주에 스스로 노래를 불렀으며(Self-accompaniment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대단한 고음의 소유자였던 동시에 기타 연주에 있어 대단한-당대의 기타 연주의 트렌드를 넘어서는-독창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가 활약하던 1926년에서 1929년 사이의 기간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로 인식되지 않았던 까닭에 당대의 젊은 후배 아티스트들이 그에게서 받은 영향, 혹은 그의 음악을 모방한 정도는 지극히 미미했으나 그의 사후 30년도 더 지난 후인 1960년대부터 젊은 아티스트들의 그의 음악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그의 음악이 가졌던 당대의 트랜드를 뛰어 넘었던 독창성에 대한 모방이 이어지면서 심지어는 1990년대에 데뷔한 White Stripes와 같은 밴드들도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가질 만큼 "뒤늦게 그의 진가가 많은 이들에 의해 제대로 평가된 아티스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한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그가 "상업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는 아니었으나 당대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던 레이블이 아니었던 파라마운트 레코드를 미국의 음반 산업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치에 올려놓은 아티스트"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게시물이 미국의 과거 인구 통계가 얼마나 힘들었던가? 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인구 통계는 얼마나 더 엉망이었나를 이야기할 자리가 아닌 관계로 그의 정확한 출생일지에 대한 설이 왜 저렇게 많은가에 대해서는 그저 1900년 1910년 1920년 이 세 번의 인구 통계 과정에서 블라인드 레몬이 그 시기마다 여기저기로(그래봤자 다 텍사스 주였지만) 이주하는 과정에서 그 떼마다 출생일자에 대한 기록이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정도로만 이해해 두자. 그의 일대기에 대해 그다지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나중에 다른 곳에서 블라인드 레몬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들께 전해드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무튼 당분간 이 블로그는 닫아두게 될 것이므로...)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가 처음 기타를 잡은 것은 10대 초반의 일이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엔 주로 파티나 피크닉에서 푼돈을 받거나 아니면 식사를 대접받는 정도의 보수를 받으며(이런 것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오블리 밴드"라고도 한다더라. 물론 티렉스도 경험이 있다거나 말거나...) 비교적 일찍 유급의 기타리스트로서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가 본격적인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진로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Dallas으로 이주한 후였고 그 때 그의 선배 블루스 뮤지션이었던 Leadbelly와 조우하게 되고 그와 함께 연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가 주로 활동하던 곳은 댈러스의 Deep Ellum이라는 지역이었고 1910년대 초반에서부터 이 곳에서 연주를 하며 지냈는데 그의 일생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시기는 1917년이었고 그 해에 그는 미리 말씀드린 바 있었던 T-Bone Walker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와 함께 연주도 하고 서로 음악적인 교류를 시작햇으며 결국은 두 명 다 블루스 명예의 전당의 첫 해에 헌액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지난 번에 소개했던 T-Bone Walker은 후에 밝히길, 댈러스의 거리를 걷고 있다가 블라인드 레몬의 눈에 띄어 정식으로 음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갑자기 왜 꺼냈는가하면 그의 짧은 정식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당대 자신의 뒤를 이을 후배 아티스트들을 발굴하는 데에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와 동시대에 활동하던 아티스트들로부터 대단히 (인간적으로도) 호평을 받던 인물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 이야기는 다른 블루스 아티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나중에 또 나올 이야기이고 아무튼 블라인드 레몬의 전성기는 그가 Paramount사에서 음반을 발매하던 시기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미리 말씀드리는데 이 사람들의 모든 음반들이 다 모노로 녹음된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계시리라... 파라마운트 레코드가 음반 산업 전체에서 최고 레이블이었다 할 수는 없지만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과 Blind Blake, Ma Rainey등이 파라마운트에 소속되어 활동하던 1920년대 파라마운트는 최고의 블루스 레이블이었다. 믿기 싫으면 말든지... 파라마운트 시절의 블라인드 레몬에 대해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과거의 그 어떤 블루스의 Invention도 절대 답습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시기"라 할 수 있다는 것이 음악학자들의 평이다. 물론 내 견해도 그렇다. 그의 참신함은 그의 기타 리프는 물론 그가 곡에서 사용했던 리듬까지 모든 것을 포괄한다. 조금 과장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흔히들 "블루스의 장르화"의 포문을 연 것이 블라인드 레몬이라 해도 그다지 과장된 이야기라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여러분들은 반복적으로 "장르화된 블루스"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실텐데,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과거 이야기했던 12마디의 기본 형식에 1-5-7-9-11번째 마디에 그 조의 1도 4도 1도 5도 1도 화음을 차례로 배열한 음악을 모두 블루스라 하는 것이 형식적인 면에서의 블루스의 정의라 한다면 "장르화된 블루스"는 여러분들이 "블루스"라는 단어에서 떠올리시는 모든 이미지들(오해하지 마시라! 캬바레에서 제비와 아줌마 혹은 유부남 유부녀들이 붙들고 춰대는 부르스는 절대 음악 용어도 음악적 구분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 단어를 티렉스는 "스탠드 바 용어"라 한다.) 가지고 있는 음악을 말한다. 이는 "장르가 심각해지는 것"과 같은 의미로 쓰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가 녹음했던 모든 곡들 중 가장 뛰어난 곡이라는 평가를 받는 곡이며 후대의 많은 뮤지션들이 리메이크 했던 곡이다. 밥 딜런은 물론 루 리드까지도... 그런데, 참으로 애석한 것은 그의 그런 위대한 음악적 업적과 비교적 훌륭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던 파라마운트 레코드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경제적으로 그다지 축복받은 생활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까봐 그러는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를) 나중에 따로 전설적인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생애에 대해 다룰 여유가 주어진다면 그 때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다만 그의 활동 방식을 두고 파라마운트 레코드와 블라인드 레몬과의 사이에 다소의 불협화음이 있었다는 정도만 이해해 두시면 되겠다. 1929년 12월 12일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블라인드 레몬의 사인은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몇 장 안되는 그의 생전의 사진들로 미루어보았을 때(그는 대단히 뚱뚱하고 당시엔 보기 드물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철저히 개인적인 추론이지만 당뇨나 그로 인한 합병증 혹은 심장마비가 그의 사인이 아닐까 하는 소설을 쓸 뿐이다. 여러분들이 아래에 링크시키는 몇 곡을 통해 텍사스 블루스라는 것이 이전의 정통적인 블루스-델타 블루스나 그 외의 것들-과 어떤 차이를 가지는가를 스스로 알아차리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지만 혹시 그렇지 못한다 하시더라도 나중에 차차 설명해드릴테니 스스로를 자책한다거나(이거 동어 반복 아닌가?) 자괴감을 느끼실 필요까지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즐감들 하시기 바란다.









Blind Lemon Jefferson - See that my grave is kept clean



Bob Dylan-See that my grave is kept clean



Black snake moan



BLIND LEMON JEFFERSON 'BALKY MULE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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