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놓고 이야기해서 내가 무슨 블루스 이론서나 블루스 역사서를 쓸 것도 아니고 일단 펜타토닉 스케일이나 그 외의 블루스의 이론적인 측면들에 대해선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포기는 아니고...) 역사적인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역사적인 작품들을 위주로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게시물의 편집 방향을 조금 틀기로 했고 그 와중에 첫번째로 여러분들께 이야기드리려 하려는 아티스트가 바로 이 분이 된 것이다. Mamie Smith! 사실 매미 스미스라는 이름은 국내에선 다소 생소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물론 블루스에 정통한 사람들이라면 다들 아는 이름이겠지만...)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다.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Crazy Blues"을 부른 블루스 싱어이다. 이 정도 되면 당연히 아시겠다. 아마 모른다고 하시는 분들은 모르시는 척 하시는 것이리라... 왜 그래? 아마추어 같이...
1883년 5월 28일 Mamie Robinson이라는 이름으로 오하이오주의 신시내티에서 태어난 매미 스미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vaudeville(노래와 만담 춤 등을 섞은 쇼나 경극을 의미한다)과 이와 매우 유사한 형태의 쇼나 경극을 일컫는 말인 Minstrel show를 하는 단체들과 함께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연주하는 것으로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캬바레 가수(이 단어 오해 없으셔야 한다. 본래 캬바레라는 단어는 불어로 '음악을 연주하는 가벼운 식사나 숭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을 가리킨다.)로 일하기 시작한 1913년에 뉴욕에 정착한다. 그리고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되는 결정적 계기는 1918년 작곡자 Perry Bradford의 뮤지컬인
1920년대 초반 레코드 산업의 역사에서 초창기의 대단히 영향력있던 레이블의 하나였던 Okeh Records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소피 터커(Sophie Tucker)로 하여금 미리 말씀드린 Perry Bradford의 몇 곡을 취입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대단히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소피 터커는 심각한 건강 상의 문제를 안고 있었고 도저히 레코딩 세션에 참여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때 작곡자였던 브래트포드는 Okeh Records을 설득하여 매미 스미스가 소피 터커를 대신하여 자신의 곡을 녹음할 수 있도록 하게끔 한다. 이에 1920년 2월 14일에 매미 스미스는 양면에 "That Thing Called Love"과 "You Can't Keep A Good Man Down"을 녹음한 음반을 발매하게 된다. 이 때 연주를 맡은 것은 Caucasion studio band였고 대단히 엄청난 성공이라 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비교적 호평을 받고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게 되어 그 뒤로도 계속 함께 녹음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1920년 8월 10일 매미 스미스는 작곡가 브래드포드의 작품인 "Crazy Blues"과 "It's Right Here For You, If You Don't Get It, 'Tain't No Fault of Mine"을 발표하는데, 이 음반은 대단히 큰 음악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곡이다. 이 음반은 "전 세계에서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의해 녹음된 보컬이 들어간 블루스 곡"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먼저 녹음된 음반들은 소피 터커에 의해 녹음되려던 곡들로서 블루스 곡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곡은 미국 음반시장에서 "거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된다. 사후적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이 음반이 얻은 폭발적 반응이 없었다면 블루스의 역사도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도 엄청나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고, 이 음반의 성공이 없었다면 "블루스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정도의 단언은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블루스 보컬의 발전은 상당히 더뎌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 견해이다. 다소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크레이지 블루스는 유색인종의 연주와 유색인종의 노래로 작업하여 발매된 "이전의 다른 음반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에 대해 음악학자나 음악사 연구자들이 이야기하며 이런 역사적 가치와 매미 스미스의 보컬리스트로서의 특별한 재능으로 인해 1994년엔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고 2005년엔 미 의회 도서관에 이 음반이 영구보존되기에 이른다.
물론 1890년대에 Geprge W. Johnson과 같은 사람도 흑인 연주자들의 연주와 함께 음반을 녹음하고 발매했으나 유럽출신 미국인 관객과 그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연주했던 것으로 음악사적으로 매미 스미스와는 조금 다른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Mamie Smith에 대한 평가로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할 부분은 그의 성공으로 인해 여성 블루스 싱어들의 음반 데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Mamie Smith의 성공으로 인해 여성 블루스 싱어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던 시기를 음악사적으로는 Classic Female Blues라 불리는 음악적인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기록되도 있으며 이 시기를 The era of classic female blues 이라고 한다. 1920년대의 거의 전 시기를 거쳐 스미스는 Okeh Records에서 대중적으로 대단히 성공을 거둔 음반들을 연작으로 발매한다. 그리고 그의 음반은 Okeh뿐 아니라 Victor(확성기 옆에 강아지가 있는 그림을 로고로 하는 회사로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이다.)에서도 발매된다. 그는 미국 전역과 유럽 전역에서 "Mamie Smith & Her Jazz Hounds"이라는 이름의 밴드와 함께 연주햤는데 이 것은 "Mamie Smith's Struttin' Along Review"라는 이름의 프로젝트의 일부분에 속하는 밴드였다. 그 당시 그의 공연 포스터엔 그를 "The Queen of the Blues"라 명명했는데 곧 이어 Bessie Smith은 스스로를 공연 포스터에 "The Empress of the Blues"이라 명명함으로 인해 매미 스미스를 한 단계 끌어내리기도 했다.
스미스는 1929년 음악 영화인
Crazy Blues Tribute Mamie Smith 1920
Mamie Smith - My Sportin' Man
Mamie Smith - Lord, Lord,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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