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Kiss in the dark-Pink Lady(1979)-
우선 오늘 게시물을 다 보시기 전에 먼저 말씀드려야할 일이 있다. 벌써 몇 번 말씀드린 것으로 기억하지만 여기서 소개드리는 1000곡이란 1000개의 명곡이 아니라 기억해둘 가치가 있는 1000곡이다. 오늘 소개할 이 곡은 이른바 보편적 범위에서 정의할 수 있는 "명곡"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곡이다. 하지만 이 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단순히 음악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며 오늘 하려는 이야기에 대해서 상당히 불편해하실 분들도 계시리라는 것 역시 당연할 일일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이 게시물이 여러분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읽지 않으셔도 좋고 항상 말씀드리지만 트랙백을 통해 반론을 제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결론을 잛게 말한다면 이 곡을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는 것은 음악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 쫘악~ 올라가겠다.
이 이야기가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사진 속의 저 누님들이 이미 1979년에 일본이나 한국인들이 그렇게 꿈에도 그리는 Billboard hot 100 chart에서 1위를 차지했던 Pink Lady라는 이름의 여성 듀오였기 때문이다. 미에(Mie)와 케이(Kei)라는 이름의 핑크 레이디의 멤버는 일본 시즈오카 현 태생으로서 그들이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그들이 핑크 레이디라는 이름의 듀오를 결성한 것은 1970년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둘의 사정이고 이들이 전국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1976년 현재 미국의 "American Idol"과 유사한 프로그램인 스타 탄조(Star Tanjo 스타 誕生)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대부분으 신데렐라 스토리나 아이돌의 탄생이 그렇듯 한 번의 텔레비전 출연으로 그들은 전국적 유명인사가 되었고 Peppar Keibu, Wanted,UFO,SOS(ABBA의 SOS와는 전혀 다른 곡임)을 연속적으로 히트시키면서 일본에서는 지금도 이른바 "틴에이저 아이돌의 원조"라 불리는 팀이다. 이렇게 전 일본을 석권하던 핑크 레이디는 1978년 "Miracle year"이라는 곡으로 드디어 미국에서 음반을 내며 라스 베가스의 무대에 데뷔하게 되며 그 이듬 해인 1979년에는 Leuf Garrett에 출연하는 등 미국에서 승승장구 하더니 급기야는 1979년엔 빌보드의 싱글 차트인 Billboard hot 100에서 1위에 오르고 만다. 지금도 아시아 가수들이 미국의 차트에서 선전하는 일은 대단히 드문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이 거둔 성과는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티렉스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들이 미국에서 성공했으니 대단한 사람들이란 이야기도 아니고, 그들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성공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어떻게 해야 공화국도 빌보드 싱글 차트의 정상에 올라갈 가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디스코의 전성시대에 혜성같이 나타나 디스코의 시대가 막을 내리던 1981년 거짓말처럼 해체한 핑크 레이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도대체 해외시장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것이다. 이 것은 여담이지만 핑크 레이디는 한국에도 온 적이 있다. 당시 TBC의 무슨 국제 가요제에 경쟁자 중 한 명으로 나왔다가 당연히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하고 돌아갔더랬다.(아마도 그들을 불러오고 일부러 상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싶다. 너희 쪽바리들이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했다고? 그렇다면 우린 걔들을 불러놓고 엿먹일테니 그리 알아라는 생각은 아니었을까?) 그들이 한국에 왔던지 그렇지 않았던지 그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이 비슷한 이야기를 필름 2.0의 최광희 기자가 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도대체가 왜 어감상 좋지도 않은 "미국시장 진출" "일본시장 석권" 따위의 이야기들을 언론이란 곳에서 앞다투어 해대고 있는가?하는 것이 궁금해졌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핑크 레이디를 폄하하려는 이야기는 아니니 그 점에 대해서는 안심하셔도 좋다. 문제는 그 것이다. 왜 자꾸 서구인, 더 정확하게는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 그들에게서 평가를 받으려 한다는가 말이다.
아래 링그할 유투브의 레이프 개럿 스페셜을 보게 되면 미국인들의 핑크 레이디에 대한 태도는 가히 가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뭐 텔레비전 쇼에 불러놓고는 분위기는 텔레비전 쇼 분위기가 아니라 동물원의 원숭이 우리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을 보며 심히 불쾌하기 짝이 없었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그 것은 미국인들이 비영어권의 동양인들을 태하는 기본적인 태도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말이 비약일 수도 잇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어떤 짓을 하건 동양인들을 그들과 동등하게 대우하지는 않는 것이란 생각은 반드시 비약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다. 아마 이 것은 한국에선 거의 원수 취급을 하는 스즈키 이치로에 대해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같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사실과 어느 정도의 관계가 있을 것이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이 아시아인들을 대하는 태도를 직접 경험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제공했던 것들 중 하나가 공화국이 자랑하는 "월드스타 비"와 "일본 정벌을 끝내고 이젠 미국 시장으로 진출하는 보아"에 대한 언론의 태도라 할 수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일본시장을 정복이나 정벌해야 하며 미국시장에 진출해야 하는가? 그런 것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느낀거나 혈통의 우월함을 느끼고 싶어 환장했는가? 타국의 사람들이 높은 평가를 내린다는 것이 문화 컨텐츠의 퀄러티를 높게 평가받는다는 것과 동의어라 생각하는가?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헐리우드 영화들의 미국의 대중음악의 패권주의적 성격을 쉴 사이 없이 이야기해대는 언론들이 보아가 미국에서 음반을 내고 비가 <닌자 어새신>의 주연을 맡은 것을 자랑스럽게 보도하며 "미국시장 진출, 정복" 따위의 문구를 남발해대는 것은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에 똑 같은 쌍동이와 같은 논리로 제국주의적이고 패권주의적인 방법으로 맞서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물론 비나 보아 개인이 공화국의 이닌으로서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그들의 사생활이며 그들의 자유이지만, 그들이 언론을 통해 그런 것들을 강조할 필요도 없으며 자신들의 그런 자부심과 자긍심을 인민들에게 나눠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본디 개인의 인문적 소양을 가리키는 용어인 문화가 언제부터 의미가 바뀌어 집단이나 국가의 성원들이 공유하는 것으로 의미가 변질되었는지는 몰라도 "무릇 문화라 하는 것은 수출을 전제로 하는 상품도 아니며 자동차나 반도체는 더더욱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집단의 문화적 수준이라는 것은 개개인들의 특성이나 소양을 반영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링크시킨 동영상을 보시면 알겠지만 핑크 레이디를 대하는 레이프 개럿의 태도는 이해하려 노력해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또 다른 이야기지만 문화의 수출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의 대부분은 "한국의 고전이라 여겨지는 부분들을 강조하거나 이른바 수출을 하려는 대상이 되는 나라의 입맛에 맞춘 것"이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 문화 컨텐츠의 수준을 판단하는 척도라는 이야기이다.
Kiss in the dark(1979년 세이부 스테디움)
Kiss in the dark(Leif Garrett Special)
Kiss in the dark(1981년 NPB올스타전)
UFO
SOS
추신>
1981년 NPB 올스타전 실황을 굳이 링크한 이유는 그 것이 그들이 대관중 앞에 공식적으로 선 마지막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의 SOS는 그 유명한 NHK의 홍백가합전 실황입니다.
별 일 아닌 것 가지고 흥분하는 것을 보면 아직 티렉스는 소아병을 완전히 치료하지 못한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핑크 레이디가 한국에 왔던 당시 티렉스는 저들을 미인이라 생각했던 것인지 아직도 의문입니다. 흑흑흑...
2009년 9월 1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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