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4일 월요일

아님 말고 1000곡(77)

77. That's all right mama(1954)-Elvis Aaron(or Aron) Presley-

가끔씩 레닌 선생이 꿈에 머리를 산발하시고 나타나 무섭게 질책하는 경험을 하는 티렉스는 얼마 전 이상한 꿈을 꾸었다. 굉장히 잘생긴 얼굴에 느끼한 웃음을 만면에 띠고 티렉스보다도 더 구렛나룻이 무성한 한 아저씨가 손에 칼을 들고 티렉스에게 한 마디 하시는 것이었다.

"야 이 아래 위도 없는 색히야 비틀스같은 애송이 색히들에 대해서는 벌써 두 번이나 게시질을 했으면서 나는 왜 빼는거야?"라는 아저씨의 이야기에

"아저씨가 누군데요?"

"야 이 색히야! 내 딸이 리사 마리야..."

"리사 마리라면 팀 버튼 횽아의 과거 애인이잖아요... 아저씨가 그 누나 아버지신가요? 별로 안 닮았어요..."

"아니 이 색히가..."

그 때 만면에 띄던 느끼한 미소는 살기로 바뀌고 칼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고 잽싸게 몸을 날려 어깨로 그 아저씨의 다리를 밀쳐 중심을 무너뜨리고 칼을 멀리 던져버렸는데 그 아저씨는 더 잔인한 미소를 짓더니 도끼를 손에 드는 것이었다. 그 때 티렉스는 "이봐~ 당신이 누군데 당신을 모른다고 날 죽이려고 그래!!!!!"라고 이야기를 했으며 그 아저씨가 도끼를 치켜드는 순간 온 몸에 식은 땀이 흐르며 잠에서 깼다. 그 시간이 네시 반... 어째 오랜만에 두 시간을 내쳐 잤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순간부터 여섯시 사십분까지 그 아저씨가 누군가를 생각하며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그 아저씨가 누구였는지 생각이 났다. 빌어먹을...그 아저씨는

엘!비!스! 프!!레!슬!리!였던 것이었다. 아무리 꿈이지만 도끼로 찍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티렉스의 생각은 그렇다. 뭐 엘비스 아저씨의 대중음악에 대한 공헌도가 상당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엘비스 아저씨의 곡을 듣지 않아도 "음악 듣느라 귀지 좀 후볐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뭐 일종의 업계의 룰이라는 것이 엘비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은 좀 미안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종의 묵계이므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긴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엘비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생각나는 동네인 테네시주 멤피스와는 거리가 상당한 미시시피주의 Tubelo라는 곳에서 1935년 1월 8일 Elvis Aaron Presley는 단순히 "Elvis"라고만 하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The king of rock and roll"이라고도 불리며 "The king"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뭐 사실 엘비스의 연대기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재미없을 일이고 엘비스가 가수를 하기 전에 전직이 어떤 것이었고 왜 죽었으며... 따위의 일들을 모르는 지구인들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확실하진 않지만 엘비스에 얽힌 안좋은 과거사들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해보도록 하겠다.



1. 다들 아시겠지만 엘비스가 처음 인기를 막 얻기 시작했을 무렵이 바로 미국에서 텔레비전 방송이 그 위세를 확장해나가던 시기와 맞물린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공화국 식으로 말하면 엘비스는 데뷔했을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 자체가 "청소년 유해물" 취급을 당했더랬다. 이유는 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그가 노래를 부를 때 마이크를 손으로 잡고 엉덩이와 허리를 돌리는 동작이 "지나치게 음탕하다"는 것이었다. 엘비스의 특정한 노래 때문이 아니라 엘비스 자신이 "청소년 유해물" 취급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이래서 나온 것이다.



2. 엘비스가 출연한 영화나 혹은 엘비스의 공연 실황의 비디오를 보면 엘비스가 스틸 스트링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나오는 장면을 수도 없이 볼 수 있는데 심지어 영화에서조차도 실제로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 것을 보고 엘비스는 기타를 못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엘비스는 "기타리스트라 불릴 정도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기타 연주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개인적 생각이지만 엘비스 정도면 다른 퍼포먼스로도 충분히 자신이 기타를 치는 것 이상으로 관중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 아니었을까?



3. 그의 부인이자 엘비스의 유일한 상속인인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마이클 잭슨과 잠시 결혼생황을 하기도 했다.-의 모친인 프리실라 프레슬리가 쓴 회고록에 의하면 자신과 결혼생황을 하는 동안 멤피스의 저택에서 하늘하늘하고 속이 훤히 비치는 잠옷만을 입을 것을 엘비스가 강요했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집에 멀쩡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자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섹스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프리실라 자신은 엘비스와의 결혼생활 내내 그와 섹스한 횟수가 80회를 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때 우리가 엘비스 아저씨를 표현할 수 있는 전문 용어는 Pervert이다. 궁금하신 분들은 사전을 찾아 보 시길 바란다.



4. 역시 프리실라의 회고록에 의하면 엘비스는 프리실라에게 억지로 마약을 복용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그 것을 거부하면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는데 역시 pervert이라는 단어를 한 번 더 써 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삼아 프리실라 프레슬리가 누구인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한 때 휠을 잡았던 코믹 패러디물인 <총알 탄 사나이>의 여주인공이 바로 프리실라 프레슬리라고 하면 이해하실 것이다. 그의 아름다운 외모를 생각해보면 그런 불행한 결혼생황을 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만큼의 고고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5. 다들 아실 이야기겠지만 엘비스가 가수가 된 계기는 상업적 이유가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에게 생일 선물로 한정판의 레코드를 스스로 녹음하여 선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전직이 트럭 운전사였다는 것은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이야기하게 되고 만다.



그런데... 이봐! 엘비스 아저씨! 내가 아저씨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은 별로 좋은 것들이 없고 앞으로 아저씨에 대해 또 이야기하게 될 때에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별로 안 나올텐데 왜 꿈에서 도끼로 날 죽이려 했던거지? 제발 다음 번 꿈에 다시 나와 사과하길 바래! 아! 그리고 사실 아저씨는 레전드 급의 뮤지션은 아니더라도 아저씨 음악이 최악은 아니었다는 것엔 동의하니 그 점에 대해선 이해해주기 바래... 그리고 오늘 링크를 걸 곡은 아저씨의 첫번 히트곡인 "That's all right mama"라는 거 알지? 그리고 사진은 아저씨 두 살 때 부모님과 같이 찍은 사진... 아저씨도 저 땐 귀여웠어... 이 건 진심이야





That's all right mama(1968년 엘비스 아저씨의 복귀 무대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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