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Kissing in the dark Etc. -Memphis Minnie(1897. 6. 3.~1973. 8. 6.)-
뮤지션으로서 활동할 때의 이름은 Memphis Minnie McCoy-Lawle이고 보통 멤피스 미니라고 하며 본명이 Lizzie Douglas인 멤피스 미니는 Louisiana주의 Algiers에서 1897년 6월 3일에 태어났으며 자신의 예명과 같은 테네시주의 멤피스에서 1973년 8월 6일 사망했다.(위대한 아티스트들은 6월에 많이들 태어났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혹은 존재한 위대한 블루스 아티스트들은 딱 두 종류로 나뉜다. 6월에 태어났거나 6월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아무튼 이 6월 생의 멤피스 미니는 역사상 최초이자 최고의 여류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기록될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보컬은 여성 블루스 보컬의 교재라 일컬어지는 베시 킹이나 베시 스미스와 견준다 하더라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뛰어난 보컬리스트로서의 Feel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부분은 절대적으로 사적인 견해이다.) 작곡가로서의 멤피스 미니는 "장르화된 블루스"가 주류를 이루기 전 원형에 가까운 형태의 블루스 곡을 쓴 작곡가로서는 티렉스의 개인적 취향에 가장 근접한 곡들을 쓴 작곡가이기도 하다. 물론 그의 곡을 쓰는 능력은 티렉스 뿐 아니라 다른 음악 연구자들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다. 멤피스 미니와 같은 뛰어난 여류 기타리스트는 이전엔 당연히 없었고 그 이후에도 과연 그 정도의 Impact을 가졌던 여류 기타리스트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독보적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29년의 대공황기에서부터 1940년대 중반 제 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되기까지 미국인들의 정서를 대표한 아티스트들 중 하나였다. 그 엄청난 불황의 와중에도 그는 꼭 은으로 장식된 소매가 있는 무대 의상(일설에 의하면 그냥 은 장식이 아니라 은으로 된 단추가 쇔에 달린 블라우스라는 설도 있다.)을 입고 무대에 올랐을 정도로 화려한 것을 선호하는 개성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대략 1942년으로 추정되는 "일렉트릭 기타가 본격적으로 블루스에 도입되기" 이전 가장 뛰어난 테크닉과 이른바 "Feel"을 갖췄던 기타리스트들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Big Bill Broonzy, Tampa Tampa Red 이 세 사람을 일컬어 후대의 음악학자들은 "Country Blues의 3대 선구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진정 안습인 것은 이 세 사람 이후로 컨트리 블루스라는 장르는 그다지 "활활 타오른 장르"라 할 정도로 발전한 블루스의 하위 장르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컨트리 블루스나 이 세 사람의 음악사적 가치가 떨어진다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메바나 유글레나 정도의 생명체라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렇게 살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워 하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멤피스 미니는 그들 외에도 영어 표현으로는 Giants(그들의 표현이다. 내 표현이 아니다.)이라 불릴만한 사람들인 Muddy Waters, Bo Diddley, Little Walter, Jimmy Rogers등의 당대의 거장들과도 (단순한 인간적 교류가 아닌 음악적) 교류를 쌓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물론이고 백인 여성들도 인간이 누려야할 지극히 기본적인 권리에 있어서도 차별이 공공연하게 행해지던 상황에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던 대목이라 할 것이다.
사샹활이라는 측면에서 그는 세 번 결혼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세 명의 남편이 다 블루스 기타리스트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Kansas Joe"로 흔히들 알고 있는 Kansas Joe Mcoy는 Harlem Halfats의 멤버였고 Memphis Jug Band의 멤버였던 Casey Bill Weldon과 Ernest "Little Son Joe" Lawler이 그들이다.(멤피스 미니의 결혼 생활에 대해 밝혀진 것은 1992년 Paul과 Beth Gardon이 멤피스 미니에 대해 쓴 책으로 인한 것이었으나 그다지 재미있는 이야기라 할 수는 없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나중에 알아서 찾아보시기 바란다. 뭐 귀찮으시면 관두셔도 좋고...) 멤피스 미니는 기타와 벤조를 배운 후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요즘 용어로는 가출을 하게 되고 테네시 주 멤피스를 여행하게 되었고 그 기간에 멤피스의 클럽에서 Lizzy "Kid" Douglas이라는 이름으로 기타를 연주하면서 음악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에 Ringling Brother circus에 참여하게 되고 1929년에 그는 결혼을 하게 되고 첫번째 녹음을 하게 된다. 그의 첫번째 녹음을 하게 된 사람이 그의 첫 남편이 Kansas Joe Mcoy와 함께였다. 그 때 그가 녹음을 하게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은 젊고 유망한 뮤지션들을 찾던 Colunbia Records의 스카우트 과정에 눈에 띄게 되어 첫 음반을 낼 수 있는 계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때 그의 음반은 대단히 특이한 "멤피스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Bumble Bee"이라는 곡이 대단히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1973년 8월 6일 그가 사망하기 까지 최소한 1950년대 초까지는 명실공히 프로 뮤지션으로서 아주 활발하진 않았더라도 나름대로 꾸준한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30년대까지의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절정기라 할 수 있는 50대가 되어서는 그다지 활발할 활동을 할 수 없었던 데에는 1950년대부터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 그의 건강의 탓이 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카고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자신의 제 2의 고향이라 할 수있는 멤피스로 돌아오게 되고 50년대 중반엔 완전히 음악계에서 은퇴하게 된다. 그의 묘소는 Missisipi 주의 Desot County 에 있는Wells라는 작은 도시의 New Hope Beptist Church에 위치해있다고 한다. 그의 묘비명에는
Lizzie "Kid" Douglas Lawlers
aka Memphis Minnie 이라 쓰여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이 묘비를 따로 세우면서 그 비용을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보니 레이트(Bonnie Raitt)이 지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그의 묘비의 뒷 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고도 한다.
"The hundreds of sides Minnie recorded are the perfect material to teach us about the blues. For the blues are at once general, and particular, speaking for millions, but in a highly singular, individual voice. Listening to Minnie's songs we hear her fantasies, her dreams, her desires, but we will hear them as if they were our own."
뭐 영어에 까막눈인 관계로 해석은 여러분들이 하시길 바란다. 설마 티렉스보다 영어를 못하는 분들이 계시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Memphis Minnie - Kissing In The Dark
Memphis Minnie - When the levee breaks(무슨 듣보잡 남자 목소리냐고? 이 것이 바로 켄자스 조 맥코이의 목소리이다.)
Caught Me Wrong Again - Memphis Minnie
Memphis Minnie - Kidman Blues
2009년 9월 1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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