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0일 목요일

듣거나 말거나 1000곡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지난 한달 반 정도 이 게시질을 위해 닥치는 대로 기호학 서적들을 탐독했다.(너 같은 무식쟁이가 이 무슨 망발이냐?라는 비아냥은 잠시 참아주시고...) 특정한 음악이 가지는 기호학적 의미라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 한달 반 가량의 탐독 끝에 얻은 결론은 기호학이라는 것이 죽기 전에 들어야할 1000곡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혹은 그 1000곡을 선정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도움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기호학을 베이스로 이런 작업을 한다는 것이 절대적 의미를 가지진 않는다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나 자신이 음악을 들으며 그 어떤 기호학적 의미를 생산해내는 데에 주력한 적이 없기 때문이고, 그런 철학적 의미에 우선하는 예술의 힘이란 것을 믿기 때문이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지만 이른바 1000곡들 중 맨 첫 곡을 소개하고자 하는 티렉스의 마음은 상당히 떨리고 있다. 의외의 곡이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선 조금 더 그 곡과는 무관해보이는(사실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이 부분이 첫 곡을 선택하게 된 핵심이지만)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이미 여러번에 걸쳐 말씀드렸지만 지금 세계의 대중음악을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미국의 대중음악은 사실 블루스와 가스펠이라는 두 개의 장르의 분파들이라고 볼 수 잇을 것이고 공교롭게도 그 두 장르 모두 흑인들의 음악이었다. 사실 진정한 아이러니라 할만한 것은 미국의 백인들은 자신들이 착취하고 억압해왔던 어찌보면 인종학상 최소한 두번째의 다수인 인종이지만(앵글로 색슨계 다음으로 말이다.) 항상 그들이 타자화해왔던 흑인들의 음악을 세계화하여 엄청난 부를 이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수의 음악이었던 리듬 & 블루스라는 장르는 지금은 굉장히 많은 변형을 거쳐 R&B라는 장르로 불리며 대중음악계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런 아이러니는 세계사를 통틀어 바로 이 경우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흑인들의 음악에 정통성이 결여되어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미국의 대중음악은 흑인들의 음악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석권하며 오히려 백인 자신들의 음악인 컨트리 & 웨스턴이나 어메리컨 모던 포크 음악을 희생시키면서까지도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이 경멸해마지 않는 흑인들의 음악을 이용할 정도로 자신들의 영악함을 발휘하는 동안 정작 중요한 그 어떤 것들을 잊어버리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70년대 대중음악의 르네상스기의 엄청난 동력으로 작용했던 백인들의 블루스 음악도 흑인들의 리듬 & 블루스 음악도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제 백인들의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일부 먹물들의 전유물로 되어가고 있는 것도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대중음악을 세계의 대중음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부작용 중의 하나라 여겨질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미국이나 영국을 제외한 비 영어권 혹은 비 미국권 대중음악계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가며 다른 대안을 찾는 작업들이 펼쳐진 것은 어찌보면 때늦은 감이 있는 일일 수도 있지만 상당히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런 과정에서 주목한 것은 인종적으로 대단히 폐쇄적인 지역이라 볼 수 있는 북구의 음악을 포함한 유럽 북쪽 지역의 음악이었으며, 굉장히 오랜 기간에 걸친 그런 노력들의 중간결산적 의미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아일랜드의 음악"이었다. 90년대의 이른바 얼터너티브의 시기에 이미 세계적 주목을 받아왔던 U2외에도 크렌베리스를 포함한 수많은 아일렌드 출신들이 주목을 받은 것은 이런 전후의 정황을 이해한다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자 여기에 티렉스가 "돈이 없다"는 푸념을 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돈이 넘쳐난다면 아일랜드로 훌훌 떠나 그들의 민속음악(포크 뮤직)에 대한 채집을 하는 등의 "진짜 부끄럽지 않은" 노력이 가능햇을 것이나, 이런 저런 제약하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두는 역사적 과정의 첫 발자욱"을 장식하게 되는 곳은 "Danny Boy"되시겠다. 정말 의외라 생각하실지도 모르겟다.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Danny Boy"가 음악사적으로 상당히 재미있는 곡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곡은 아일랜드의 민요인 동시에 스코틀랜드의 민요이기도 하며, 아일랜드 출신들이 부르는 것과 스코틀랜드 출신들이 부르는 것이 비슷한 듯,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아일랜드의 민요였던 대니 보이가 스코틀랜드의 민요가 되었듯, 아일랜드의 음악이라는 것이 "언어적으로 영국과의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했던 이유"로 인해 비슷한 경로로 잉글랜드와 대서양 건너의 미국의 포크 음악에 영향을 줄 수 있었을 것이란 추측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국내엔 우리의 탐 존스 형님의 버전 등이 많이 알려진 까닭에 "다소 느끼한 노래"로 기억하시는 연장자분들도 상당히 계실테지만 이 곡은 사실 우울하기 짝이 없으며 기교라는 것 자체를 논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멜로디의 아름다움"에 기대고 있는 곡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로 아일랜드의 음악에서 서양 대중음악의 뿌리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를 제공하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티렉스에게 아일랜드 음악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곡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부연설명 같은 것이지만, 사실 1000곡이라는 이야기를 꺼낼 때 머릿 속에선 무조건 첫 곡은 이 "Danny Boy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곡을 첫번째로 소개한다는 것 외엔 다른 구체적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티렉스에겐 무조건 이 곡에서 시작을 해야 1000곡이건 10000곡이건 그 것이 유의미했던 것이다. 유투브에서 검색을 해보면 수많은 버전의 "Danny Boy"가 있다. 앤디 윌리엄스의 그 것도 있고 에릭 클랩튼의 그 것도 있고 키스 제럿의 것도 있으며, 유투브에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으나 국내 밴드인 "두번째 달"의 그 것도 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링크해놓은 것은 (제발 파랑색 글씨를 클릭해보시라!) 아일랜드 버전의 그 것스코틀랜드의 여성 코러스들의 그것이 있다. 티렉스가 느꼈던 그 감동을 같은 정도로 느끼실 수 없으시더라도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잇을 것이라 장담한다. 오늘은 이런 저런 이유로 짤방 따위는 없다. 그리고 중간에 음악을 들으시다가 "You raise me up"으로 멜로디가 넘어가는 것이 지나치게 자유로운 부분을 발견하시더라도 그 것을 가지고 "Youraise me up" 이 표절을 했다는 등의 오버는 하지 마시기 바란다. 이 정도는 업계에선 애교 아니겠는가...
(이런 짓을 괜히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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