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0일 목요일

아님 말고 1000곡(11)

1. Recado Bossa Nova-Various Artists-
1808년까지 소위 "대서양 노예 무역 상회"라는 이름의 반동적인 회사는 무려 50만에 이르는 흑인들을 아프리카로부터 미국으로 데려왔다. 이들 대부분은 서아프리카 출신이었으며 서아프리카는 이미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음악적으로 발달된 지역이었다. 1843년엔 드럼에 맞추어 춤을 추는 댄스가 등장한 래비쉬 페스티벌이 뉴 올리언즈의 콩고 플레이스란 지역에서 최초로 열리기도 할 정도로 그들은 음악과 댄스가 생활화 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페스티벌엔 뉴 잉글랜드와 뉴욕 지역의 흑인 노예들도 참석햇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 그들의 음악은 싱글라인의 멜로디와 이른바 Call-and response라 불리는 싱어가 선창을 하면 코러스가 그를 받는 대화 형식의 보컬을 담고있는 형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미국의 음악사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이런 것을 흔히 African pantatonic scale이라 부르는데 이는 나중에 "그 유명한" 블루 노트 재즈의 기반을 이루게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것이 바로 재즈의 기원이라는 것이 서구의 대중음악사 연구가들에게는 정설로 통하고 있는 이론이다.(물론 티렉스가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티렉스 역시 이런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편이다.)
재즈의 기원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19세기 초반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혹은 노예 뮤지션들은 유럽의 악기들의 연주법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그 중에서도 바이얼린은 그들이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연주한 악기로서 그들의 이른바 Cakewalk Dance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유럽의 음악과 악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19세기 초반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노력은 그 때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띄기 시작하여 그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흑인 음악 특유의 싱코페이션(Syncopation, 쉽게 이야기하자면 당김음)과 유럽의 음악들을 접목시켜 재즈의 기초를 닦았고 그런 과정이 진행되면서 기초 단계의 재즈에 캐러비언 계통의 음악과 흑인들의 멜로디, 그리고 유럽(특히나 프랑스)의 살롱 혹은 캬바레 뮤직이 더해지면서 재즈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유럽의 음악들과의 접목의 과정은 결정적으로 재즈라는 장르의 음악이 루스나 가스펠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도 말씀을 드리겠지만 재즈의 일정 단계에서는 관객들은 모두 백인이고 연주자는 모두 흑인인 클럽 재즈를 거치게 되는데 이런 것을 근거로 "재즈는 진정한 흑인의 음악이 아님"을 주장하는 서구의 대중음악사가들이 꽤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서 티렉스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재즈가 진정한 흑인의 음악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따지는 것보다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같은 흑인음악들 중 블루스나 소울 혹은 리듬 & 블루스보다 스스로 재즈 매니아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은 동시에 다른 장르의 흑인음악들에 비해 재즈가 좀 더 광범위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었는가?라는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조금 더 피부에 와닿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일단 결론부터 내리자면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을 것이란 추론을 해보는데, 일단은 재즈가 다른 흑인 음악들에 비해 아시아인들이 이해하기에 조금 더 쉬운 것이 그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엔 재즈라는 음악 자체가 다른 지역의 음악을 굉장히 포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장르이고 초창기부터 다른 흑인음악의 장르에 비해 비교적 백인들의 높은 참여도를-감상이나 연주 두 분야 모두에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일본이나 한국 모두 서구, 특히 미국의 대중음악이 미국인들에 의해 소개되기 시작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미 백인들이 재즈라는 장르를 폭넓게 향유하고 있었다는 것이 극동지역에서 다른 흑인음악 장르에 비해 재즈가 폭넓은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 것은 첫번째의 이유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재즈라는 장르가 다른 대중음악의 장르에 비해 고급스러운 음악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인들이 그리고 백인들이 즐긴다는 이유로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연주자들이 수트를 입고 연주한다는 이유로 미군의 주둔이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또한 어메리컨 키드들이 국가의 권력을 잡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 일본과 한국에서 재즈가 "스노비쉬한 관심"을 끌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티렉스의 추론이다. 추론은 그냥 추론이니 반론이 있으신 분들은 덧글 말고 트랙백을 사용해주시기 바란다.
이렇게 지껄이고 보니 오늘의 곡에 대해 별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 같아 죄송하다.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곡-Recado Bosa Nova-는 말 그대로 전형적인 보사노바 리듬의 곡이고 개인적으로는 재즈라는 장르를 처음 입문하던 시기에 가장 즐겨들었던 곡이기도 하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을 먼저 드리자면, 이 곡의 원작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티렉스의 목을 처 주소서!" 이 곡이 가지고 있는 대중적 인기가 워낙 광범위한 나머지 이 곡은 빅밴드 스타일로도 편곡되어 연주되고 기타로도 연주되고 트리오나 쿼텟 혹은 퀸텟의 형태로도 연주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연주된 곡이다. 사실, 이 곡이 재즈의 가장 오래된 녹음이라든지 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티렉스가 재즈에 입문하던 시기에 이 곡을 들었고 이 곡이 재즈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광범위한 동시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곡은 아니지만 일단은 어렵지 않은 곡이기 때문에 재즈라는 장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티렉스의 개인적 기대로 인해 이 곡을 소개하는 것이다. 뭐 덧글에 간단한 감상 같은 것을 적어주셔도 좋다.


Recado Bossa Nova(Barney Kessel의 기타 트리오,연도가 정확하진 않으나 1960년대 초반 무렵)
Recado Bossa Nova(Hank Mobley,1965)
Recado Bossa Nova(Jerry Constanzo/Mike Carubia Big Band)
Recado Bossa Nova(Laurent Fourgo and his ensemble)
Recado Bossa Nova(Bruce Abbot-Frd Fried Quartet)


추신>
1. 개인적으로 재즈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다만 일부 재즈를 스노비쉬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들이 있을 뿐이니 그 점에 대해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재즈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찌 재즈를 테마로 한 바를 개업하는 지인의 음반 선택 작업에 그토록 심하게 관여할 수 있었을 것이란 말인가?
2. 일부 트랙이 화질이나 음질이 엄청 구리거나 버퍼링의 압박이 심할 수도 있으나, 티렉스의 고의적인 의도는 아님을 이해해 주시길...
3. 이 게시물들을 스크랩해가시는 것은 대단히 환영할만한 일이나 무슨 용도로 어디로 스크랩을 해가는지 정도는 밝혀주셨으면 한다. 당신들이 몇 초 동안 제목만 보고 이 게시물을 스크랩해갈 동안 티렉스는 새벽 서너시까지 몇 권의 책과 무려 백군데에 가까운 외국의 음악관련 웹진의 사이트를 헤메고 유투브의 동영상들을 보고 또 본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4. 혹시 이 곡의 원작자를 알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면 알려주시길 바란다.
5. 마지막으로 짤방은 Barney Kesse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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